안산에 사는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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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생물종130 관찰기록302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생태계교란종이란다. 생태계 교란종이라는 것도 정의하기 꽤나 어렵다는 생각이든다. 우리 생태계로 들어왔으면 일원 아닌가 라는 생각..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곤줄박이의 ‘곤’은 ‘까맣다’라는 ‘곰’의 의미이고 ‘박이’는 일정한 장소에 박혀 있다는 의미이다. 왠지 동양화가 생각나는 새였다. 주먹만해서 귀여웠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산지의 습한 양지에서 자란다. 줄기는 모나고 퍼진 털이 있으며 처음에는 곧게 서나, 자라면서 옆으로 50cm 정도 뻗는다. 아기 턱받이 같아서 귀엽다.
인천 계양구 효성동
집 근처 나무들을 유심히 본것은 처음인것 같았다
생각보다 큰 소나무가 있었다
집에 들어갈때는 항상 땅만 쳐다보거나 핸드폰을 보면서 갔던 것 같다 주변에 저렇게 크고 예쁘게 생긴 소나무가 있는지 몰랐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참 귀엽고 사랑스럽게 생긴 것 같다. 아주 작은 몸집에 날쌔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모든 몸짓이 장난스러워 보인다.
경계심이 적어 버드피딩, 핸드피딩도 가능하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깃털의 배색이 인상적인 새인 것 같다.
새들을 보다보면 무채색의 깃털 사이에 채도높은 블루계열의 색이 많다는 걸 느끼게 된다.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는 화려하지 않아야만 할 것 같은데 말이다. 어쩌면 눈부시게 푸르른 자연의 색을 닮아야만 더 쉽게 숨을 수 있기 때문일까?
이유가 매우 궁금하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새를 보는 눈이 아직 둔감했을 때 처음 발견하여 찍은 직박구리이다. 빠르게 날아다니는 새를 찍는 것이 어려워 무력감을 느낄 즈음 이쁜 배경에 선명하게 찍을 수 있어서 힘이 되었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잎사귀와 무채색의 직박구리의 색대비가 인상적이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새를 찍기위해 한동안 같은자리에 있을때 마주한 청설모이다. 자신만의 식량 저장창고를 만든 것 같다. 구멍속에 머리를 힘껏 들이미는 포즈가 만화스러워서 재밌고 귀엽다. 먹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니 욕구에 대한 인간의 시선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욕구를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 금욕주의도 있는 만큼 욕구에 대한 인간의 관점은 양가적인 것 같다. 어쩌면 선악의 가치판단 없이 욕구에 충실한 짐승이 더 선해보이는 것은 왜일까?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흔히 볼 수 있는 까치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사람이 사는 환경에서 볼 수 있는 조류는 한정되어있다. 이들은 도시에서 사람들과 같이 어우러져 산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들의 성격이 무던한 탓일까 혹은 사람을 믿기 때문일까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맥문동이라는 이름은 뿌리의 생김에서 따온 것이다. 뿌리는 한방에서 약재로 사용된다. 덩이뿌리는 한방에서 약재로 사용하는데 소염·강장 ·진해·거담제 및 강심제로 이용한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어린잎을 삶아서 우려내어 독성을 제거한 뒤 나물로 쓴다. 이 식물은 알칼로이드인 솔라닌을 함유하고 있어 전초를 한방에서 해열·이뇨·피로회복제로 약용한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어린잎은 나물로 먹고 꽃과 열매가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심는다. 잔가지와 뿌리를 말려 한방에서 기침, 감창에 사용한다. 열매는 핵과로 둥글며 10월에 짙은 파란빛으로 익는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모양은 콩팥형, 부채형에 좁은 부착근으로 나무에 붙는다. 두께는 0.5-1mm로 굉장히 얇다!̤̻ 연중/ 죽은 활엽수 나무에 군생한다. 백색 부후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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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시끄럽게 싸우는 소리가 나서 가보니
직박구리 한마리가 다른 두어마리를 쫓아내고 있었다.
저쪽에 열매가 있나보다... 했더니 역시 무언가를 뜯어먹고 있더라.
다시 본인 자리를 쟁취하고 차분해진 직박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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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숭아 씨앗이다. 이렇게 작은 렌틸콩같은 알갱이들이 어떻게 예쁜 봉숭아로 필지 궁금하다. 만화 도라에몽의 ‘시간 보자기 도구’(시간을 빠르게 흐르거나 되돌리는 가상의 도구)를 써서 빨리 핀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코스모스 씨앗! 이다. 어떻게 키우는지도 꼼꼼히 확인했으니 집에가서 잘 키울 수 있겠지? 사실 나는 식물을 키우는 데에 젬병이다. 늘 ’얘만큼은 잘 자라주면 좋으련만..‘이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물을 준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싸가지 없기로 유명한 까치다.
그치만 참...... 언제 봐도 잘생겼다.
새까맣고 맑은 눈과 빛에 따라 푸르게 보이는 날개깃,
매끈하고 까만 부리와 다부진 다리까지.
하지만 자기네 구역에 들어오면 깍깍깍깍깍깍깍깍 나갈 때까지 지랄하는 성질머리가 그의 외모만치 빛난다.
까치네 설날이 인간보다 이른 것도 그 성질머리가 한몫 했으리라.
이번에 만난 까치들은 전부 겨울이 다가오니 털찐 게 느껴졌다.
점심 회의하러 모인 까치들이 전부 둥글둥글하니 귀여웠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나무발발이다.
나무를 쫑쫑쫑쫑 나선형으로 올라가고 있는 작은 흰 털뭉치를 보고 찍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나무발발이였다.
둥글게 둥글게 쫑쫑쫑쫑 숨가쁘게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그 짧은 템포 속에서 부지런히 나무의 작은 벌레들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보기 드문 겨울 철새라는 말에 솔직히 유치하지만 살짝 기뻤다.
11월 안에 한번 더 만날 수 있을까?
운이 따라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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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새다.
처음 박새를 알게 되었을 때, 펭귄같은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마냥 작고 귀엽다고만 생각한 박새는
음...... 여전히 마냥 작고 귀엽다.
박새가 흔하다보니 가장 자주 보게 되는데 나의 경우 배쪽의 넥타이의 생김새로 종을 구별한다.
박새는 배를 덮을 정도로 기다란 넥타이를 갖고 있고, 수컷의 넥타이가 암컷보다 넓다.
진박새는 짧은 넥타이를, 쇠박새는 나비 넥타이를 갖고 있다.
물론, 다 귀엽다.
이번에 만난 박새는 계단을 열심히 오르내리며 무언가를 주워먹고 있었다.
햇빛이 좋아서 등의 옅은 노란빛이 유독 빛나던 날이었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곤줄박이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특유의 끼쟁이로, 본가 근처의 수리산에는 사람이 오면 강아지마냥 쪼르르 모여든다.
나도 손에 서너마리 앉은 적이 있었는데, 깎은 손톱이라고 표현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작은 발톱이 느껴졌었다.
봉은사에서 만난 이 곤줄박이도 누군가가 뿌려둔 것 같은 견과류를 야금야금 찾아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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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비둘기라고도 불리우는 멧비둘기다.
매우 흔한 텃새지만, 처음 탐조하러 중랑천에 갔을 땐 한겨울이라 토실토실해서 참 좋아하던 새였다.
울음소리를 내던 중 음이 꼬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땐 잠시 멈췄다가 처음부터 다시 부른다고 한다.
바보같고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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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우연히 만난 꿩이다.
화려한 무늬를 갖고 있지만 색이 수수한 게 꿩의 암컷인 까투리였다. (수컷은 “장끼”라고 한다.)
철조망 뒤에 있기도 했고, 주변 낙엽과 색이 비슷해 처음에는 있는 줄도 몰랐으며
나중에는 “거북이가 왜 여기있지?” 라고 생각했다.
흔하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꿩을 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했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팥배나무 열매를 먹느라 정신이 없는 물까치다.
떼로 지어나니는 습성에 걸맞게 대가족이 단체로 팥배나무를 털어가고 있었다.
몇몇은 숨가쁘게 열매를 먹고 나르는 걸 보니 근처에 둥지가 있는 듯 했다.
물빛 날개 여럿이 이리 휘익 저리 휘익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산속의 바다에 와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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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설모다.
첫번째는 산의 초입에서 만난 청설모로, 입에 견과류를 한가득 물고 이것들을 어디에 숨길지 찾고 있었다.
두세번째는 물까치가 열매를 먹느라 와르르르 와르르르 날아다니는 걸 구경하다 만난 청설모인데, 물까치의 성격을 알고 있었는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자신을 숨기고 있었다.
마치 길에서 만난 건달들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고등학생 같았다.
물까치들을 잔뜩 경계하는 귀가 귀여우면서도 안쓰러웠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까마귀과의 어치다.
까치, 물까치만큼이나 사납고 영리하다.
소리 흉내에도 탁월한데, 다른 조류의 소리 뿐만 아니라 개나 고양이, 심지어는 사람의 목소리도 따라할 수 있다.
검색하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어치의 새끼는 부모에게 배고프다 보챌 때 소리내지 않는다고 한다.
가끔 이런 사실을 알게 될 때 동식물이 얼마나 똑똑한지, 사람이 얼마나 오만한지 깨닫곤 한다.